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글/문제점 및 논쟁 (문단 편집) ==== 암글(암클) ==== '암글'이라는 호칭은 "한글은 천한 여인네들이나 쓰는 천한 글이라며 한문을 중시했던 양반들이 비하하여 불렀다"는 사유에 따라 주장되는 비칭이다. 이는 '언문'에 비해서 비하의 의미가 확실히 드러나는 명칭이지만, 사실 한글이 여성들에게서만 쓰였다는 '''근거는 없다'''. 물론 처음에는 주로 사대부의 아내들과 여성들이 많이 사용하게 된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그러나 점차 쓰는 사람들이 많아져 사대부의 처와 일반 백성들이 주로 사용하다가 점차 사대부들도 사용하게 된 것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애초에 창제자인 세종 역시 성별과 신분을 막론하고 '사람마다 쉽고 널리 쓸 수 있도록' 창제한 글이라고 반포하였기 때문. 하지만 실제 역사에서 사대부들이 한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정할 만한 정황은 발견되지 않는다. 발견된 최초의 한글 편지는 1490년 [[군관]]으로 함경도에 파견되는 [[나신걸 한글편지|나신걸이라는 남성이 부인에게 쓴 편지]]다. 훈민정음이 반포되어 30년된 시점에선 이미 사대부들도 일정수준 이상 한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조선 중기엔 한글 주석이 달린 유교경전이 발간되고 있었고 유교 경전에 대해 가르치고 그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이 어디까지나 사대부 계층이므로, 사대부들이 한글을 천시했다기 보단 한자의 보조 학습이 가능한 쉬운 글자로써 받아들였다는 것이 좀더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게다가 후기에 들면 정조가 왕세손 시절에 쓴 한글 편지같이 왕족도 한글을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자료가 있다. 사실 사대부가 마음속으로 언문을 천하게 여기고 있었든 아니든 간에 함부로 언문을 비하하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낼 수는 없었다. '''[[세종대왕|임금]]이 만든 글자'''이기 때문에 그것에 대고 함부로 입을 놀렸다간 왕조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반역행위로 간주되어 의금부로 끌려가게 되기 딱 좋기 때문이다. 상기한 연산군이 홧김에 언문을 탄압하려다 관둔 것도 자기 조상의 업적을 폄하했다간 조상의 정통성이 훼손되고 이는 나아가 그 후손인 자신의 정통성도 위협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왕도 선대왕의 업적을 함부로 어쩌지 못하는 판국에 사대부가 선대왕의 업적을 비하하면 무슨 사달이 날지는 뻔할 뻔자. 그나마 양민이라면 모를까 사대부쯤 되면 살벌한 정치판에서 사소한 말실수 하나가 꼬투리를 잡혀서 본인은 물론 소속 파벌까지 굴비처럼 엮여서 줄초상으로 이어지는 일이 많은 만큼 더욱 말을 아껴야 할 테니 사대부가 대놓고 언문을 비하했을 가능성은 더더욱 떨어진다. 때문에 암클 또한 (사대부의 속내야 어쨌든) 비하의 목적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